선택의 연속인 삶을 겪다 보면, 직감을 믿게 된다. 훗날 돌이켜 보았을 때 직감의 힘으로 전진한 결과가 좋지 않을지라도 어떤 방향으로든 유의미한 결과를 남긴다고 본다. 내면의 희구와 열망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곧 선택의 주체인 나를 신뢰하는 연습일 테다. 세상과 나를 믿기 위해서는 주어진 하루를 잘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만족스러운 현재의 축적이 바탕이 되어야 자기 신뢰가 쌓이고, 경험이 반복되며 더 나은 선택으로 연결된다.


매일을 온전히 책임지는 프리 워커로 지내는 요즘, ‘어떻게 하면 자유롭고 아름다운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있다. 일과 일상이 블렌딩된 이 시기를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지만, 여러 면에서 막막하고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자기 주도적 삶을 방관할 수 없다. 순간순간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너무나 귀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고 여겨졌다. 오로지 나의 의견으로 굴러가는 삶이란 얼마나 가볍고, 찬연하고, 위태로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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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기거하고, 현재를 응시하는 방법에 관해 고민하는 내게 두 사람이 찾아왔다. 바로 책과 영화를 통해서다. 책에서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조르주 페렉을, 영화에서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 씨를 만났다. 


조르주 페렉은 그의 저서 <보통 이하의 것들>에서 일상성 자체를 새롭게 인식하고, 남다른 애착을 드러냈다. “흔한 것, 일상적인 것, 뻔한 것, 평범한 것”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 주변을 둘러싼 ‘보통 이하의 것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만든다. 자신이 매일 같이 드나드는 장소를 기록하고, 런던을 여행하며 그곳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고 전파하며, 가상의 여행지를 수학 공식을 통해 배열하고 상상 속에서 세계를 떠도는 여행자가 되어 엽서를 작성하고, 좋아하는/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을 시리즈처럼 적어 나간다. 일상의 순간을 붙잡아 기록하는 행위는 페렉이 삶을 가동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우리가 질문을 제기해야 할 것은, 벽돌, 콘크리트, 유리, 우리의 테이블 매너, 우리의 식기, 우리의 도구, 우리의 하루 일과, 우리의 리듬이다. 영원히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을 것 같은 것에 질문해 보자. 물론 우리는 살고 있고 숨 쉬고 있다. 우리는 걷고,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고,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잔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 언제? 무엇 때문에?” - <보통 이하의 것들> 중 무엇에 다가갈 것인가 18p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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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등장하는 히라야마 씨 역시 날마다 되돌아오는 일상을 발명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새가 지저귀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양치를 하고, 식물에 물을 주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신 후 차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한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고, 공원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고,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의 순간을 필름 카메라로 기록하고, 공중목욕탕에서 씻고, 지하철 역사 내에 있는 술집에서 소주 한 잔을 걸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으며 잠든다. 쉬는 날이면 필름을 현상하고,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산 뒤 단골 술집에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밋밋하고 단순한 삶에서 히라야마 씨는 자주 미소를 짓고, 묵묵히 할 일을 해낸다. 반복되는 하루를 그저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귀감을 준 영화였다. 무엇보다도 내겐 코모레비를 바라보는 히라야마 씨의 눈동자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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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환경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가꾸고, 기록하기를 시도하는 와중에 하우스키루를 발견했다. 대학 시절, 숱하게 드나들던 산울림 소극장 맞은편 거리에 자리한 카페다. 여느 때처럼 마감을 앞두고 공간의 전환이 필요해 찾은 하우스키루는 처음 간 곳 답지 않게 익숙하고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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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벽과 삐걱이는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오래된 나무 바닥, 벽돌 구조체를 고스란히 드러낸 러프한 마감, 입구와 동일하게 장식한 옅은 푸른빛의 타일. 조르주 페렉도 이렇게 공간을 찬찬히 살펴보며 묘사를 해나간 것일까? 아르텍 테이블과 잘 어울리는 레이 체어, 알리아스 스파게티 체어 등 미드센추리 빈티지 가구가 주를 이뤘다. 구석구석 놓은 식물이 공간에 생기를 더해준다. 작업을 하기 전에 주위를 차례로 응시하고, 잠시 사색하며 여유를 깊이 감각하니 기분 좋은 에너지가 차오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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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전면을 통창으로 설계해 자연광을 깊게 드리운 덕분에 간접광만 있어도 충분히 밝은 느낌을 주었다. 바 테이블, 2인석, 4인석 등 다양한 형태의 자리가 있어 작업을 하러 오기에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커피 메뉴는 심플하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다섯 가지 타입의 싱글 브루잉으로 구성했고, 논커피의 경우 밀크티와 쿨라임 에이드, 얼그레이, 캐모마일, 잉글리쉬 브렉퍼스트가 있었다. 디저트는 레몬, 얼그레이 마들렌과 푸딩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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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카페를 고르는 기준에서 가장 신중을 기하는 부분은 커피의 맛인데, 하우스 키루의 커피는 마실 때마다 놀라움을 안겨준다. 싱글 브루잉 커피를 주문하면 원두의 종류와 산지, 재배 고도, 가공법, 테이스팅 노트 등이 적힌 작은 카드를 함께 주신다. 그 카드에 적힌 테이스팅 노트 맛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점이 재밌었다. 보통은 엇비슷하다고 여기곤 했는데, 키루의 커피는 맛의 레이어가 매우 풍부하고 섬세했다. 직접 로스팅을 하는 카페는 아니기에, 원두 선택이 탁월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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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키루가 있는 날에 방문했을 때, 푸딩과 고로커피로스터스의 에티오피아 물루게타 문타샤 원두로 내린 브루잉을 골랐다. 지난번에는 같은 로스터리 숍의 콜롬비아 로꼬 에이프릴피치를 맛보았기에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다. 산뜻한 요거트와 복숭아 향이 진하게 느껴졌던 지난 커피와는 다르게 이번엔 자두 맛이 강하게 났다. 동행한 친구들에게도 맛 보라며 권했는데, 모두가 맛이 훌륭하다고 해서 기뻤다.


하우스키루를 가는 날마다 여름의 틈을 벌려 그 한가운데를 거니는 것처럼 무더웠다. 그럼에도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다시 이곳으로 향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일상적 장소로 삼고 싶은 공간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알아차리라. 호기심을 가져라. 아름다움을 찾아내라. 색다른 일에 대해 말하라. 계절의 변화를 주목하라. 출근할 때든, 점심을 먹을 때든, 친구와 대화를 할 때든 순간을 음미하라. 당신을 둘러싼 세상과 당신이 지금 느끼는 것을 의식하라. 당신의 경험을 성찰하다 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소피 하워스, <마인드풀 포토그래퍼 - 인생을 위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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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170


시간

매일 08:00-22:00 (수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haus.ki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