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들어 올리는 예술은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정신을 어딘가로 이동시킨다. 강명희 작가의 순수한 색채로 빚은 그림이 환상으로 향하는 경유지로 역할했듯이, 좋은 예술은 언제나 그래왔다.
1947년생 강명희 작가는 붓 몇 개와 캔버스만 들고 혼자 여행을 떠나 매혹적인 풍경과 기억을 담은 대형 그림을 그린다. 고비사막부터 제주 해변, 파타고니아 빙하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연의 색을 정교한 붓놀림으로 표현한다. 그녀에게 여행은 그림의 본질을 되새기는 특별한 방식인 것이다. "나를 열면 해변이 있을"거라던 아녜스 바르다 감독처럼 강명희 작가의 내면세계에는 자연계의 무수한 모습이 존재한다. 그녀는 공허와 충만함 사이를 오가는 대자연의 모습을 선명한 색으로 그려 내며 인간 안에 내재된 신비로운 차원으로 이끈다.
파도의 포말이 넘실대는 듯 강렬하고 역동적인 블루로 표현한 <대평 바다>, 짙고 깊은 녹음이 서린 <안덕 계곡>, 가본 적 없는 이국의 대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시리아, 역광>이나 <뚜렌>, 나신의 여성이 평화로이 마을을 활보하는 <여름> 등 다채로운 기억의 자국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실로 작가에게 대자연이란 탐구의 장소이자 영감의 성전이다.
홍콩 기반의 갤러리 빌팽(Villepin)이 개최한 강명희 작가의 개인전 <강명희 : 시간의 색>은 그들이 한국에서 개최하는 첫 번째 전시이다. 이러한 사실 자체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테지만, 전시 장소의 선정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성수동의 국수 공장과 정비 공장을 개조한 스튜디오, 키르 서울에서 열린 전시는 장소성 덕분에 더욱 참신하게 다가왔다. 목재 트러스, 콘크리트 벽과 기둥이 그대로 노출된 인더스트리얼한 전시장이기에 강렬한 붓질과 색채의 혼합으로 빚어낸 강명희 작가의 작품과 극적인 조화를 이뤘다고 본다.
계단과 창의 요소를 활용-이를 테면,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여성을 그린 그림을 실제 유리창 옆에 거는 식으로-해 그림의 서사와 연결 짓는 배치도 모두 갤러리 빌팽과 작가가 활발히 소통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직사각형, 정사각형, 원형, 타원형 등 다양한 프레임의 작품을 각 구역마다 보여주는 방식도 모두 "그림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를 심도 있게 고려한 갤러리스트와 작가의 합작품이라는 것. 섬세한 디자인이 적용된 전시장에서는 마치 시간을 내려놓는 것처럼 강명희 작가의 작품과 작품 사이를 여행했다. 작은 궤적을 만들며,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채로.
기간
2023년 11월 3일~2023년 11월 21일
장소
키르 서울(서울 성동구 성수이로26길 27-20)
인스타그램
@villepin_art(갤러리 빌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