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내게 각별한 해로 기억될 것임이 분명하다. 봄의 방콕과 싱가포르, 초여름의 부산과 코펜하겐, 여름 끝자락의 홍콩 그리고 가을의 뉴욕까지. 두 달에 한번 꼴로 공항에 갔고, 해외로 여행과 출장을 다녀왔으니 가히 내가 꿈꾸던 삶의 모습과 비슷한 결을 이뤘다고 본다. 이 연속적인 여행의 경험이 과연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최영미 시인이 1990년대 유럽을 떠돌며 쓴 에세이집 <시대의 우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점점 나 자신에 근접해 갔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얼마짜리 방이면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그녀의 문장처럼 내 여행의 이유는 1차적으로 일상의 환기이나 궁극적으로는 정체성 탐구이다. 어떤 삶을 건축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데에는 비일상적 시공간에 비견할 것이 없다. 생경함 속에서 내가 무엇에 감응하고, 무엇을 보고 듣고 싶은지를 살피다 보면 결국 원하는 삶에 가까워질 것이라 여겼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여행을 하면 할수록 더 자주 떠돌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라 여겼으나, 실상은 나의 거처와 사랑하는 가족, 친구의 곁에 더욱 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잘 머문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숙고해 보니 그 답은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행하는 노동은 어떤 숭고함에 가깝다는 것. 당연하게 누리던 언어, 사회적 인프라, 문화가 나의 기반이 되어준다는 명징한 사실, 행복은 안전하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때때로 피어오른다는 깨달음. 


방랑자의 삶에 매료되었던 대학생 무렵, 나의 자아가 말랑하던 때에는 유랑하는 보헤미안이 가장 이상적이고 용감하게 여겨졌다. 서서히 사회적 자아가 생기고 내가 하는 일에서 깊은 애정을 품게 되자 이를 건강하고 유연하게 지속하는 삶이 곧 소명처럼 다가왔다. ‘지치지 않고 어떻게 오래 지속할 것인가?’라는 질문 아래 여행은 하나의 방편으로 자리 잡았다. 정체성이 흐릿한 시절의 여행은 그저 명랑이 범람하며 목적 없는 방황에 가까웠으나, 스스로를 좀 더 파악하고 난 뒤에는 자유롭고 충일한 발걸음이 상영되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보는 눈이 생기며, 보다 밀도 높은 효용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지난주 뉴욕으로 떠날 때는 이나연 작가의 <뉴욕 생활 예술 유람기>와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가 함께했다. 두 권의 책에서 길어 올린 문장이 이 도시를 걷는 내내 뇌리에 맴돌았다. 


“뉴욕에서 산다는 것은 걷는다는 뜻이다. “ - <뉴욕 생활 예술 유람기>


”아니면 내가 에드워드 호퍼로 변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그처럼 엿보는 자, 훔쳐보는 자, 열린 창문의 품평가, 흥미로운 광경을 찾아 떠도는 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8번가의 식품점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를 만족시키고 안정시키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눈으로 흡입했는데.. (중략)” - <외로운 도시>


실로 이곳에서는 어떤 황홀경에 빠지기 쉬웠다. 끝없이 도열한 건물, 분주한 사람들, 다양성의 얼굴이 발화하는 언어… 쉴 새 없이 무언가에 영혼이 사로 잡히는 듯했다.


뉴욕에서의 여정과 서울에서의 생활 방식은 금세 자연히 포개졌다. 도시의 분주한 흐름 속에 몸을 맡겨 표표히 흘러 다니다가도 안식처가 되어주는 미술관과 서점, 공원에 자주 발길을 멈추곤 했다. 결코 익숙지 않았던 것은 거리마다 빼곡히 들어찬 건물들. 같은 모습 하나 없는 입면들. 세월의 켜가 쌓인 건물이 틈 없이 연결되는 모습은 답답하지 않고 되려 예술적이었다. 재료, 형태, 크기가 모두 상이한 건축물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바로 뉴욕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이동 시간을 제외하고 일주일 간 뉴욕을 떠돌다 서울로 왔다. 오직 깊은 잠에 빠져 하루를 보내고, 다시 일상의 제자리로 돌아와 월요일을 시작했다. 때마침 성수동에서 열린 전시 취재가 있어 몽롱한 정신을 끌어안고 전시장을 방문했는데, 뉴욕에서도 가장 자주 목격하던 하얀 벽과 그림의 장면을 또다시 서울에서 마주했다. 목전에는 홍콩에서 온 유럽 출신 갤러리스트를 비롯해 외국인 관계자, 행사 진행자, 관람객 등이 뒤섞여 이곳이 잠시 뉴욕인가 서울인가 착각이 일게 했다. 이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뉴욕에서 가장 하고 싶던 일은 서울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그저 예술을 가까이하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편견 없이 어울리며, 도심 속 자연을 관찰하고 거리를 목적 없이 배회하는.. 그러다 마주한 멋진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어쩌면 아주 멀리 가지 않아도 오랜 시간을 들여 일궈온 일상에, 보금자리에 희망의 실체가 숨 쉬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간의 떠돎과 회유, 포기 등이 안도감과 감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 또한 떠나지 않았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일이다. 


예술은 인간이 스스로를 극복하면서 삶을 고양하는 방편이라고 하는데, 나는 예술의 자리에 여행을 두고 싶다. 여행은 일상의 항해를 위한 돛을 정비하는 행위이자 가볍고 경쾌한 삶을 지휘하는 인간 정신의 활동이다. 올해 일상 바깥의 영역에서 남긴 발자국이 내 안에도 흔적을 남겼다. 삶에 필요한 무언가를 놓칠 때마다, 영혼에 주름이 질 때마다 여행을 하며 다양한 모양을 발견하겠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나로 살고자 일상을 부지런히 매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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