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에 앉았을 때 마주 보이는 벽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은 인쇄물이 붙어있다. 대부분 도시의 이름이 적힌 엽서나 미술관 티켓인데, 어디에선가 얻은 스티커도 있다. 2유로짜리 포토마통에서 찍은 사진도. 여행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하나 둘 붙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빼곡해진 벽면을 보고 있으면 당시의 기분과 감정이 하나 둘 흘러든다. 환희, 해방감, 고독, 끝없는 새로움. 잠시 모든 것을 멈춰야 하는 지금 이 시절을 지나며, 나의 시선도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
여행지에서 각종 인쇄물을 수집하는 것은 곧 내가 여행을 기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떤 장소에 머물렀고, 어떤 사람을 만났으며, 어떤 풍경에 매료되었는지가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순간을 영원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록을 놓을 수 없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이 기록물들을 보며 글을 쓰기도 한다. 여행 중 일기장을 펼치는 날은 손에 꼽았지만, 오히려 그날의 기억을 환기하는 물건이나 사진 혹은 영상 따위를 본다. 그렇게 여행의 나날은 재창조되고 곧 일상이 여행의 일부가 된다.
올해는 기록하는 삶을 수호하기 위해 서울에서도 애정하는 공간의 흔적을 수집했다. 엽서, 수첩, 책자, 천가방 등 마음의 풍요를 안겨주는 작은 존재들을. 그중에서도 체부동의 한적한 골목길에 위치한 문구 상점, 올라이트(Allwrite)에서 구입한 엽서는 방 한편을 숲처럼 만들어 주었다. 무성하게 자란 초록의 나무와 공원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만발한 꽃들이 담긴 장면이었다. 이밖에도 상점의 한쪽 벽면은 낯설고도 아름다운 풍경의 엽서들로 가득했다.
올라이트에는 엽서뿐만 아니라 다이어리, 달력, 메모지, 스티커, 마스킹 테이프 등도 있었다. 뛰어난 미감이 돋보이는 다이어리는 색과 디자인의 다양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1 year - 1/2 year -1/4 year - monthly + weekly 등) 크기도 무난한 편이어서 언제 어디서든 가지고 다니기 편리해 보였다. 여기서 메모할 노트를 찾는다면, 저마다의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유/무선, 모눈, 스케치 등 형태가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에 띈 노트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핸디 노트북과 워터 프루프 커버가 제공되는 저널 노트였다.
특히 이번 시즌의 다이어리와 노트는 종이의 에이징에 초점을 맞추어 제작했다고 한다. 코팅을 없애고 표지와 내지 모두 종이의 질감을 살렸으며, 기록할수록 나이 드는 종이의 특성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다. 잉크를 머금은듯한 질감의 표지, 미색 종이의 내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눈에 피로감을 줄여주어 오랜 시간 동안 기록하기에 좋다.(*올라이트 홈페이지 oneand-all.com 참고)
사실 올라이트는 기록광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지 꽤 오래된 곳이다. 원래는 창전동에서 상점을 운영하다가 서촌으로 이전했다. 창전점은 인적 없는 골목길에 위치했었는데, 이번에도 서촌의 메인 길에서 살짝 벗어난 조용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2021년도의 새로운 기록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올라이트를 권하고 싶다. 온/오프라인으로 이용이 가능하니, 온라인 사이트에서 먼저 둘러보기를 바란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차분히 기록하며 남은 겨울을 보내도 좋겠다. 보다 희망찬 내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장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5가길 41
시간
여는 날 13:00-17:00(매주 상이)
인스타그램
@allwrite_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