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의 외교사절단으로서, 곧 서방의 나라로 임무를 수행하러 떠난다. 동료들과는 경성역 일이등 대합실 안에 있는 티룸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곳에서 가배 한잔을 한 후 열차에 오를 계획이다. 경성에서 상하이, 상하이에서 모스크바, 모스크바에서 베를린, 베를린에서 바르샤바, 바르샤바에서 모스크바, 그리고 다시 모스크바에서 경성으로 이어지는, 아주 기나긴 여정이다. 몹시 피로할 테지만, 조국의 안위를 위해서 마음을 다잡고 출발하려고 한다. ...(중략)... 기차 안은 의외로 한산했다. 내가 타는 이등실은 언제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도 곁에서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시며, 다가올 날들에 대해 생각했다. 조선은 극복해야 할 난관이 숱하게 놓여있다. 생각에 잠기려는데, 화륜차가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큰 소리를 내며 출발한다.


갑자기 이게 웬 소설인가 싶겠지만, 맞다. 이건 에디터가 사실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소설의 일부다. 1900년대 초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베를린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는 것. 한국전쟁 이후로 남북이 갈라지는 바람에, 오늘날의 우리는 ‘유럽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꿈으로만 두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된 것은 ‘문화역서울 284’의 <공간 투어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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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 위치한 문화역서울 284에는 휴관일을 제외하고 하루 3번(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 오후 4시) 공간 투어 프로그램을 사전 신청자에 한해 무료로 제공한다. 투어는 진행 중인 전시와 무관한 문화역 서울 284의 상설 프로그램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전시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시를 보기 전에 전시장, 즉 구 서울역사의 건축적, 역사적 의미를 알고 본다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공간 투어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서울역사에 관한 알쓸신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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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울역은 1925년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2004년까지 기차역으로 사용되다가 KTX 개통되면서 바로 옆에 새로운 서울역이 만들어진 것이다. 경성역은 앞서 언급했듯이 국제역의 일부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철도가 우리나라 반도에서 끊기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이 꿈도 못 꿀 정도로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나 외국 사신, 우리나라 고위 관직 층만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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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 옆의 숫자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근대 문화재 284호. 즉, 사적 번호를 그대로 붙인 셈이다. 과거의 경성역은 오늘날 복합 문화공간이자 생활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시민으로서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매우 흥미롭고 알찬 구성의 기획 전시가 계속 진행 중이다. 특히 <커피 사회 전>과 <호텔 사회 전>에서 선보인 사진과 문서기록, 영상, 설치미술, DJ 공연, 행위예술뿐만 아니라 커피 향과 칵테일의 맛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 수준이 감탄스러웠다. 최근에는 현대미술 기획 사무소 숨프로젝트(SUUM project)가 기획한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의 전시, <헤더윅 스튜디오 : 감성을 빚다>가 진행된 바 있다. 전시가 열릴 때마다 각종 연계 프로그램도 풍성하니 꼭 한번 방문해보시길.



장소 

서울 중구 통일로 1 서울역


시간

매일 10:00-19:00(매주 월 휴무, 수요일 마지막 주 21시까지 연장)


웹사이트

www.seoul284.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