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 8일은 세계 고양이의 날이다.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이 고양이 인식 개선, 유기묘 입양, 오랜 기간 사람과 함께한 고양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2002년 창설한 기념일이라고 한다. 포털 사이트의 알림 덕분에 이른 아침 출근길에 고양이를 생각하며 남몰래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오전에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에서 가을-겨울 오브제 컬렉션을 보고, 도산 공원을 통과해 스페이스 로직을 둘러 보았다. 회사원의 정체성을 지닌 이상 어딜가도 가구보다 공간, 정확히는 아름다운 근무 환경이 더 눈에 들어온다. 창밖으로 짙은 초록이 일렁이고,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면 공간에 머무는 행복이 얼마나 깊을까? 머리 아플 일도 금방 환기가 되겠거니 싶었다. 예전에는 파티션이 높고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일터가 좋아 보였다면 요즘엔 무조건 창이 크고, 넓고, 자연이 내려다 보이는 환경이 좋다.(올해 초 이사한 집도 그 점이 마음에 들어서 가족을 설득했는데, 정작 방에 머무는 시간이 수면 시간을 빼고는 하루 평균 3시간도 안되는 것 같다..)


누군가 일의 즐거움은 빈도가 아닌 강도에 있다고 말했는데, 나 역시 일주일에 한두번 있는 외근의 짜릿함으로 고단한 회사 생활을 버티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여름 별미, 콩국수를 먹고 너무 더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요 근래 자주 시도하는 조합은 에스프레소와 얼음. 진하고 양이 적어서 호로록 마시기에 참 좋다. 회사에 복귀해 20분도 채 안되어 다음 일정으로 향했다. 서울디자인창업센터에 입주한 신진 가구 디자이너 인터뷰가 있었다. 이 칼럼을 진행할 때면 의례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반드시 묻는 질문이 몇 가지 있는데, 인터뷰이도 대체로 내게 꼭 묻는 질문이 있다. 이를테면 저를 어떻게 아셨나요? 같은. 대체로 브랜드를 새롭게 전개하는 사람들이기에 느껴지는 특유의 산뜻함과 맑은 기운이 있다. 그들의 용기와 투지가 부럽지만 그렇다고 디자인의 영역을 흠모하게 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전하기에 부족함 없는 지식 정도만을 갖추고 싶을 뿐이다. 도서관에서 디자인 서적을 찾아 읽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좀 더 좋은, 뾰족한 질문을 하고 싶기 때문에.


인터뷰를 마치고 조금은 지친, 동시에 후련한 마음으로 홍대 중심가를 걷는데 용흔이가 왔다. 내가 근처에서 끝난다고 하니 냉큼 홍대로 달려온 것이다. 나의 한마디라면 항상 거침없이 행동하는 용흔이가 든든하면서도 때론 바보 같다. 사실 오늘은 혼자서 운동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허락(?)도 없이 온 용흔이에게 조금은 심술이 났다. 가까워서 자주 보는 만큼 그의 일상이 곧 내 일상이 된 것만 같다. 그래도 얼굴 보니까 또 좋아서 금세 베시시 웃으며 거리를 걷다가 버스를 타고 동네로 왔다. 오늘 세계 고양이의 날이라고 말하자 마자 귀신 같이 밤색 고양이 한마리가 나타났다. 아니,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한참 전부터 햇빛을 쐬고 있었을 것이다. 내 눈에 딱 들어오자 신이 나서 기념으로 사진을 남겼다.


집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일을 할 때 즐겨 찾는 카페로 왔다. 마감주라서 괜히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인터뷰 녹취나 정리하자는 생각에 카페에 왔지만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난다 출판사의 좋아하는 시리즈인 <나의 사적인 도시> 뉴욕 편을 읽자 마자 기록하고 싶었다. 박상미 작가는 오랜 기간 정해진 주제 없이 그날 느낀 것을 지속적으로 써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글들이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밖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실제로 원고를 읽어나가니 길고, 암담하고, 눈물나고, 때로 눈앞이 환해지기도 하는 여행이 시작된 듯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 스스로 내 발자국을 쫓는 일은 낯익기도, 낯설기도 했다. (중략) 그동안 많은 것을 겪은 느낌이다. 오래 왔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미약하나마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멀리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함께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2015년 4월 박상미


8년 전의 작가님의 걸음을 좇고 싶은 마음에 글을 적는다. 모국어를 상실하고 누구보다 용감하게 낯선 세계를 탐험했을 그녀의 자취를 엿보며, 나의 하루를 기록한다. 기록의 즐거움은 강도가 아닌 빈도에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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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풍요보다는 결핍에 가까운듯하다. 마음의 허기가 빈 종이 앞으로 나를 데려온다. 행복한 기억도 물론 남기고 싶지만 정도로 따지면 궁금하고 아픈 지점을 굳이 들추기 위해 글을 쓸 때가 더 깊다. 흔히 글 쓰기는 치유라고 하지 않는가. 내면 세계를 톺아 보는 행위로서 ‘쓰기’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치유의 속성이 있어 평생 지속하게 되지 않을까. 사주 선생님께서 6-70세에는 글을 놓고 쉴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 나이대에는 과연 어떤 노인이 되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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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에 관해 생각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면에 초를 켜는, 마음의 등불을 켜는 행위가 아닐까. 꾸준히 쓰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쓰면 쓸수록 내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창작의 동기나 재료가 사라질수록 걷고, 또 걷는다. 걷는 행위는 세상과 불화하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자 현재를 느슨하게 끌어안는 시도이다. 걷다 보면 어느새 사유에 가닿게 되고 무엇을 취하고 버려야하는지 자연히 알게 된다. 많이 걸었다는 것은 그만큼 생의 요구에 타협하지 않고 나아가려는 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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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1) 맑은 하늘과 햇살 어린 나무를 보며 자전거 타기

(2) 숲의 한가운데서 간단하고 신선한 점심 먹기

(3)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손 가는 대로 흥청망청 읽기

(4)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잎차 내려 마시기

(5) 언제든 바깥에서 와인 마시기

(6) 낮잠 자고 일어나서 제철 과일을 얹은 요거트 먹기

(7)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도시에서 발길 닿는대로 걷기

(8) 백색의 공간에서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9) 매일 정진하는 일이 무엇이든 사랑해 보기

(10)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 표현하기